레이블이 만강잡설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만강잡설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3년 10월 21일 월요일

지리산 종주, 14시간


 지리산에 다녀 왔습니다.

 10월 18일 금요일 저녁 10에 관광버스 편으로 출발을 해서 10월 19일 토요일 새벽 3시부터 산을 올라 저녁 5시경에 버스가 출발하는 중산리에 도착했던 14 시간에 걸친 지리산 종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엔 그냥 쉽게 생각을 했습니다. 지리산 한번 가 보지 뭐 ^^;;

 해서 남자 4명이서 산악회 관광버스 덜컥 예약을 하고 배낭에는 먹을 것 잔뜩 챙겨서 버스를 탄 시간이 밤 10시였습니다.

 정원 40인승 정도되는 버스에 약 30명 남짓 탔는데 지리산에 도착할 즈음에 산악회 산행대장이 안내를 했습니다. 종주코스가 있고 천왕봉 코스 중 하나를 선택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종주코스를 신청했습니다. 왜냐고요? 출발 전부터 종주를 하자고 했으니까요. 아무 것도 모른 채 ^^;;


<지리산 종주 코스, 파란 라인>

 지리산 입구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2시가 조금 넘었는데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간다고 했습니다. 메뉴는 된장찌게 단 하나, 5,000원. 우리는 이런 사실도 모르고 최소 2끼는 산에서 해결을 할 줄 알고 먹을 것을 잔뜩 싸온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싸온 배낭만 풀어놔도 족히 6명분 하루 식사가 충분한 양이였으니까요. 두세명이 혹 부족할까봐 2인분을 싸왔기 때문이었죠. 이렇게 사 먹을 줄 알았으면 거기에 맞춰서 오는 건데^^;;

 그런데 말이죠. 식당에서 밥을 먹던 도중에 우리 일행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던 산악회 산행대장에서 물었습니다. 오늘 종주 코스는 몇키로 정도냐고. 그랬더니 약 35km 라고 말합디다. 순간 산악회 산행대장의 일행으로 보이는 듯한 남자가 갑자기 손가락 4개를 펴서 산행대장에게 내밀더니만 40km 라고 외쳤습니다. 산길은 꼬불꼬불해서 펼치면 거리가 더 늘어난다고 말이죠.

 그리고 그사람은 우리 일행의 행색과 면면을 다 파악하고는 종주는 택도 없으니 쉬은 천왕봉 코스나 다녀오라고 아주 친근하게 웃으면서 추천을 하더이다. 종주 코스는 오후 5시에 출발하는 광버스 출발 시간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거의 속보 수준으로 걸어야 한다고 겁을 주면서, 이렇게 처음 와서 종주에 성공한 팀이 있는데 바로 마라톤 동호회에서 온 팀밖에 없었다고 덧붙이기까지 했습니다.  

 이 말에 우리 일행중 두명은 이미 천왕봉 코스로 마음을 돌렸고 한명은 무슨 말이냐, 종주를 목표로 왔으면 무조건 종주를 해야 한다고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이제 내차례였습니다. 저는 종주를 외쳤습니다.

<2013년 10월 19일 오전 8시35분경에 찍은 사진>

<*국립공원 직원분의 말로는 올해 단풍이 별로라는^^;;>

 천왕봉 코스는 오후 1시경이나 2시경이면 다 내려 오는데 종주코스 인원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버스가 출발을 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앞에서 이미 두명이나 천왕봉 코스를 선택한 마당이 굳이 종주를 선택한 것은 『기다릴 바에는 종주를』하자는 이유가 더 컸습니다. 그리고 쉽게 가자던 두명 조차도 종주를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은 것은 가다가 정 힘들면 중간에 포기를 하고 세석대피소에서 탈출하면 된다는 산행대장의 설명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죠.

 이렇게 해서 시작한 종주 길이 파란색 라인을 따라 아래와 같이 계속 이어집니다. 성삼재분소는 새벽 3시부터 등산객들에게 통과를 허용합니다. 노고단에 도착한 시간이 3시 35분 경, 이곳에서는 4시에 입장을 허용을 합니다. 이곳에 모인 등산객들의 분위기는 흡사 운동선수들이 출발선상에 가지고 있는 긴장된 분위기였습니다. 저만 그렇게 느꼈던가요? ^^

 마음씨 좋은 국립공원 직원이 5분 빨리 3시 55분경에 문을 열자 마자 마치 출발신호를 들은 선수들 처럼 다들 앞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경쟁하듯이 말이죠. 우리는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자는 또 다른 코스와는 달리 정해진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서둘려야 한다는 말을 이미 들었던 지라 더 더욱 서둘렀습니다. 문 열기 전에 문 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열자 마자 우리 일행이 제일 먼저 통과를 했으니까요^^.

<후레쉬 비추고 노고단대피소에 하나둘씩 올라오는 등산객들>

<국립공원 지도 캡쳐, 1>

 코스는 파란색 라인을 따라 쭈욱 이어집니다. 일행중에서 시종일관 종주를 외쳤던 한명은 무지 속도를 내면 앞서가는 바람에 어디선가 헤어진 후에 얼굴 한번 보지도 못했고^^;;, 저는 남은 일행과 토끼봉 정도까지 동행을 하다가 그 다음부터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아래의 사진이 위 코스 어디에선가 찍은 사진입니다. 오늘 천왕봉에서는 일출을 봤을 거라고 추측을 하면서 말이죠.


<국립공원 지도 캡쳐, 2>

 그리고는 위 그림의 코스부터는 끝날 때까지 일행 없이 쭉 혼자 걸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아직 힘이 남아 있는 상태였습니다. 마주치는, 앞서가는 산객들의 인사에 힘 있게 맞장구까지 쳤으니까요^^. 하지만 여유롭게 쉬지는 못했습니다. 연하천대피소에서 사진 한장 찍은 것이 다였을 정도로 서둘렀습니다.

<국립공원 지도 캡쳐, 3>

 그리고 위의 코스부터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몹씨 힘들었던 구간이었습니다. 특히나 산악회 산행대장의 말로는 세석대피소를 오전 11시경에 통과를 해야 시간 안에 종주를 무사히 끝낼 수 있다는 말이 떠올라 쉬지도 않고 앞만 보고 내딛었습니다. 드디어 세석대피소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1시에 한참을 넘긴 오후 12시 20분경. 여기서 산행대장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여기 시간이 12시 20분인데 시간안에 도착할 수 있겠느냐, 산행대장은 개개인의 컨디션에 따라 가능하다고 했고, 몇시까지 기다릴 수 있는냐는 물음에, 오후 5시까지는 중산리 버스 대기 장소까지 내려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흡사 5시 넘으면 버스는 떠날 거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세석대피소 지나서 부터는 거의 체력이 방전이 되어서 어떻게 계속 걸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석대피소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이런 상태의 몸을 가지고 세석을 지나 천왕봉으로 가다가 등산스틱을 두고 온것을 뒤늦게 알고 다시 돌아갔다 오기까지 했으니...... 너무 힘들어 등산스틱 그 까짓것 포기해 버릴까 하다가 다시 돌아서서 되가져 온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스틱의 보조 없이 힘 빠진 상태에서 걸었더라면 아마 얼마가지도 못하고 주저 앉고 말았을 겁니다.

 정 힘들면 세석대피소에서 탈출하여 거림공원지킴터쪽으로 내려와서 요금 2만원하는 택시를 타고 중산리 집결지로 오면 된다는 산행대장의 말이 떠 올랐으나 이번 기회에 천왕봉을 못보면 두고 후회가 될 것 같아서 또, 지리산, 지리산 하면서 가고 싶어 할 것 같아서, 갔습니다.

 쉴 새도 없고 느껴볼 새도 없이 정신 없이 지나버린 지리산의 연하선경을 뒤로하고 공사가 한창인 장터목대피소에서 육포 몇조각 뜯어 먹고는 다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천왕봉으로 향하고 있었을 때 이미 마음은 오늘 오후 5시까지 도착하지 못하면 기차나 버스를 타고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있습니다. 자신감이 이미 조금 상실이 되었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천왕봉으로 향하는 길은 오르막이 많았으며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제발 나에게 사진 찍어 달라는 부탁을 안하기를 바랬습니다. 만일 누군가가 부탁을 한다면 『죄송, 힘이 많이 빠진 상태라서 멈추면 못 갈 것 같으니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세요』라는 말까지 미리 준비하고 말이죠. 다행이도 사진 찍어 달라고 부탁한 분들은 없었습니다. 너무 힘들어 보였을까요? ^^.

 제석봉을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구간이 오르막의 하이라이트였습니다. 머리띠 덕분에 땀이 눈으로 흐르지는 않았지만 머리띠 위로 쓴 모자의 창을 타고 땀이 비오는 날 처마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쉬지 않고 두두둑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많이 땀을 흘려본 적이 있었던가 할 정도로 말입니다. 도중에 양쪽 허벅지에 통증이 와서 잠시 멈추고 있는 사이에 왼쪽 다리는 저절로 통증이 풀렸고 오른쪽은 주무르고 비벼도 안 풀리다가 오늘 발을 번쩍 들어 힘껏 땅을 쿵 내딛으니 이내 풀리더군요. 안그랬음 근육통 때문에 장터목에서 포기한 우리 일행 중 한명처럼 될 뻔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금도 듭니다. 나중에 내려 와서 보니 그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절뚝거렸습니다^^;;.

 천왕봉을 코 앞에 두고 통천문을 통과하기 직전에, 저 만큼 위에서 내려오시던 산객님들이 말 없이 격려의 눈길을 보내며 좁은 길에서 기다려 주시던 배려에 힘을 얻고 용기를 얻어 도착한 천왕봉!

 내가 여기까지 왜 왔던가?

 사진 찍으러 왔습니다^^. 제 앞에서 사진을 찍고 물러나려는 사람들 중 한명에게 핸드폰을 내밀면서 부탁을 했습니다. 아마 지치고 허기져서 몰골이 형편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하면서.

 형편 없군요. 웃긴 게 웃는 게 아니군요^^;; 물론 여기서도 주위를 돌아보고 경치를 볼 사치는 갖지 못했습니다. 사진 찍을 여유는 있었지만, 사진은...., 내려 갔을 때, 진짜로 다녀왔냐는 물음에 대비해서 남긴 겁니다^^;; 이때가 2013년 10월 19일 오후 2시 46분이었습니다. 이제 내려가야 하는데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4시간 정도 걸렸다고 했습니다. 올라오는 시간 반을 내려가는 시간으로 잡으면 2시간, 5시 안에는 도착을 할 수 있겠군. 이 단순한 계산 때문에 천왕봉에서 내려 가면서 약간의 여유를 부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내려가도 내려가도 끝이 없었습니다. 경사도 꽤 급하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같이 내려가던 산객들에게 물어봤습니다. 타고 온 관광버스가 몇시에 떠나냐고? 그랬더니 4시 혹은 6시라고 답하더이다. 그때부터는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만일 늦으면 기차나 버스 타지 말고 저 사람들이 타는 6시 관광버스에 끼여 가야지. 뭐, 한자리 정도의 자리는 여유가 있겠지^^. 하지만 알고 보니 대전 팀이더이다. 서울 팀들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은 더 조급해지는데, 처음에는 같이 출발을 하여 탈출 코스를 따라 이미 하산을 완료한 동료들에게 계속 오는 전화,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시간을 확인할 때마다 찍혀 있는 부재중전화 몇통씩, 일전에 부탁해 놓은 장비가 나왔는데 사겠느냐는 안내문자까지^^;;, 이렇게나 힘 드는 답장을 해야 해, 말아야 해? 해야죠^^. 문자는 잠시 쉬면서 육포 뜯는 시간에 하고 동료와의 전화통화는 내려 가면서 간간히 통화를 했습니다.

 계속이어지는 지금 어디? 라는 독촉 전화에 목포지점 1km을 남겨두고는 거의 뛰다시피 했습니다. 아~, 무릎과 다리 아픈 것보다 겨드랑이처럼 살과 살이 비벼지는 곳의 쓰라림이 더 컸습니다. 겨드랑이는 물론이고 비슷한 여건을 갖춘 신체의 어딘가가 따갑고 아파서 어기적어기적 거리는 것 같으면서 한편으로는 뛰어서 도착한 시간이 거의 오후 5시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시간 한번 기가막히게 맞춘 것입니다.

 새벽 3시 출발, 오후 5시 도착, 14시간 걸렸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했냐고요? 처음엔 『한번 해보자』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점점 오기가 생겨『하자』로 바뀌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여지껏 산행도중 답례 안사에는 마음 깊이 나오는 인사가 아니었습니다. 해오면 안해줄 수는 없기에 형식적으로 하는. 하지만 이번 산행에서 산객들이 건네는 한마디 인사에 많은 힘을 얻었습니다. 그분들은 이미 이런 힘든 과정을 거친 다 아는 인생 선배님들이었습니다. 이제 나중에라도 누구에겐가 되돌려 드려야 겠지요.

 또, 자신을 사랑하렵니다. 왜냐고요? 이렇게나 학대를 했으니 이제 더 사랑해야지요^^.

 이제 지리산 종주에 필요한 준비물입니다. 당일 14시간 기준으로 적어보겠습니다.

배낭 : 큰 것 필요 없습니다. 25리터 정도가 적당합니다. 목이 마르므로 자주 마셔줘야 하는데 배낭에 물통을 넣고 호스를 밖으로 빼서 먹을 수 있는 기능이 있다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또 육포 같은 것을 가면서 쉽게 꺼내 먹을 수 있도록 배낭 허리띠 부분에 수납 공간이 있으면 좋습니다.

옷 : 내의부터 겉옷까지 기능성을 추천합니다. 특히 추울 때 대비해서 보온, 방풍 기능이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전 이번에 내의, 위에 한겹 더, 또 내피, 그위에 고어까지 입었는데도 능선에 올라타니 추웠습니다. 안 입더라도 준비는 해얄 것 같습니다.

물 : 700ml 정도면 가능합니다. 중간에 있는 대피소에서 무료로 채울 수 있습니다. 단 대피소랑 약간 떨어져 있어 내려갔다 올라갔다 해야 합니다. 그래도 배낭 무게를 줄일 수 있다면 이정도 수고쯤이야^^.

식사 : 글쎄요. 퍼지고 앉아서 밥 먹을 시간 없습니다. 밥 대신에 단 것이 많이 든 빵이나 초코렛, 육포, 과일 종류별로 듬뿍 준비하면 좋을 것입니다. 전 이번에 홍시를 까서 넣어가서 잘 먹었습니다. 그리고 육포 한근을 가져 갔는데 거의 반근을 먹어치웠습니다. 도착해서 식당에서 사 먹는 식사와 오후에 하산에서 식당에서 사 먹는 식사는 제외하고 자신에게 맞춰서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렌턴 : 새벽에 3시부터 쓰기 시작하면 오전 6시 30분까지는 써야 합니다. 모자를 쓰고도 머리에 고정할 수 있는 헤드렌턴 추천합니다.

등산화 : 전 이번에 워킹전용 등산화를 신고 갔습니다. 하지만 바닥이 비브람창인가 해서 습기와 바위에 약간의 미끌림이 있습니다. 이것보다는 덜 미끌리고 워킹전용 등산화가 좋습니다. 신발이 좋아야 체력소모가 덜합니다.

양말 : 두컬래 혹은 세컬레. 전 두컬레 가져가서 한번 갈아신었습니다.

머리띠 : 땀 많이 나면 반드시 추천해 드립니다. 땀이 눈으로 들어가는 일이 없습니다. 특히 안경 끼신 분들은 꼭 지참하시길^^.

등산스틱 : 반드시 가져가야 합니다. 좌우 한쌍이 무겁거나 귀찮다면 한개로라 가져가야 합니다. 전 이번에 한개만 가져 갔는데 얼마나 써댔는지 버스안에서 4단으로 된 잠금을 풀다가 2단밖에 풀리지 않아서 버렸습니다. 하나에 5천원짜리^^;;

피해야 할 것 : 술 ^^;;

 중산리로 하산하여 목 빼고 기다렸던 일행들을 만나 한 말, 『앞으로 지리산은 또 올 일 없다』, 일행은 『많은 사람이 그리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오고 싶어 한다』

그렇네요. 다녀 온 지 얼마나 됐다고 지리산이 궁금해지네요^^. 다음 번에는 대피소에서 하룻밤 자고 여유롭게 주변도 돌아볼 수 있는 코스로 생각해 보지요^^.

만강일향
만강하시길 바랍니다^^.

2013년 7월 16일 화요일

들어 보실래요? ^^

 가끔 평일날이나 주말 저녁 무렵, 집에서 베란다 너머로 햇빛이 아주 조금 남아 있을 때 한잔 걸치고 술기운에 실실 웃음 짓는 일이 낙입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기 전의 순간을 즐기는 방법이지요.

 토요일이나 일요일 중 하루는 그저 산에서 해갈을 하고 다닙니다. 제 자신을 추스리고 체력을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해야만 5일을 품을 수 있는 여유와 에너지가 생깁니다. 이 방법은 너무나 강렬해서 요즘 블로그 운영에 지장을 주기도 하지만 덕분에 일상생활의 스트레스 잔재를 거의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요즘 날이 왜 이래요? 지난 주 내내, 이번 주는 오늘까지 내내 비가 그치지 않습니다. 산에도 못갔습니다.^^;; 뭔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한동안 접어둔 방법을 꺼냈습니다. 오늘은 퀸, 보헤미안 랩소디가 그 대상입니다. 방문을 닫고 한곡만 몇시간이고 반복해서 꽝꽝거립니다.

 들으면서, 보면서 라이브 속에서 열광하는 환호와 손들을 봅니다. 차갑고도 무거운 피아노음과 이들에 답하는 생전의 프레디를 눈으로 쫓으며 같이 외칩니다. 떠나가도록.

 이제 풀렸습니다^^.

만강일향
만강하시길 바랍니다^^.      

2013년 7월 7일 일요일

진짜 사나이^^

 어젠 손가락, 발가락 힘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산에서 해갈을 하고 다녔더니만 오늘 아침은 늦잠을 잤습니다. 깨워서야 일어날 정도로 말이죠.^^

 이렇게 휴일날은 게으르게 뒹굴거리며 보내는 것이 최곱니다. 하지만 창밖에는 약간의 빗방울도 보이고 해서 휴일의 즐거움을 또 보태고자 한 일이 한잔이었습니다^^.

 네, 맥주에 소주 타서 마셨습니다. 좀 더 따지자면 소주 먼저 붓고 맥주를 따랐습니다. 그래야 거품이 안나고 맥주를 잔 제일 위까지 따를 수 있으니까요^^;;.

 한잔을 집에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티비 프로그램인 진짜 사나이를 보게 되었지요. 오늘은 극중에서 출연자들에게 『어비이 은혜』를 부르게 하더이다.^^

 제가 초등학교(국민학교) 다닐 때는 어버이 은혜가 아니라 어머니 은혜였습니다. 5월 8일, 일년에 한번 부르는 노래였지요. 오늘 티비에서 이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습니다.

 몇십년 전에 제가 코흘리게 초등학생이었을 때, 저의 담임이셨던 여선생님이 이 노래를 반 아이들에게 가르쳤습니다.

 그리고는 회초리로 교탁을 치며 수업시간 내내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몇번이고 반복을 시켰습니다^^.

 감사를 느껴야 할 대상이 누군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다들 잘 계시죠?

 (오늘 부동산 관련 포스트는 건너 뛰겠습니다^^;;)

 만강일향

 만강하시길 바랍니다^^. 

2013년 5월 5일 일요일

오빠~


 오빠, 이 단어는 옛날에는 지금처럼 이렇게 자주 쓰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친인척 관계라든지 특별한 사이가 아니면 오빠란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남여관계에서도 000씨, 선배, 가끔은 형이라는 호칭을 사용했지 오빠는 안 썼지요. 제 기억으로는 1990년대에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랬던 것이 지금은 대한민국 인구 반이 오빠입니다^^;;. 이렇게 된 원인이야 여러가지가 있겟습니다만, 그 중 제일 큰 것은 TV가 아닌가 합니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티비 프로그램에 나와서 남자를 호칭할 때 '오빠'라는 말이 나오면서 부터일 것입니다.

 특히 아나운서, 그때만 해도 보수적인 그룹으로 인식된 여자 아나운서들이 티비에 나와서 '오빠'란 표현을 사용하면서부터 이 말이 우리나라에 서서히 퍼지기 시작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지나가다가 눈만 마주쳐도 상대 여자가 "오빠, 왜 봐?"라고 할 정도로 한글 중에서 제일 많이 쓰는 단어가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 북한산에서 주루륵 미끄러 질 뻔했는데, 제 옆을 지나던 여자가 "어머, 놀래라"하면서 그 여자랑 같이 온 남자 일행에게 "저 오빠가 미끄러질 뻔해서 나 놀랬어!"하면서 지나가더이다. 처음 본 사람에게도 오빠, 심지어 나이가 저보다 위인 것 같은데^^;;. 오빠가 보편화 되어 버렸습니다.

 당신들에게 우린 무엇인가요?

 오빠~, (뭘 물어, 당연한 걸 가지고^^.)

만강일향
만강하시길 바랍니다^^.

2013년 4월 29일 월요일

두쪽~


  누군가 말했습니다. 집안에 호랑이 그림을 놔두면 좋다고. 좌우지간 좋다고 하길래 인터넷에서 하나 시켰습니다.(아~ 팔랑귀, 지퍼로 채울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_-;)

  족자형으로 된 것인데 벽에 걸어놨더니 빤히 쳐다보는 사나운 눈빛이 묘하게 사람을 긴장시키길래 마음에 안들어서 다시 둘둘 말아서 구석에 처박아 버렸습니다.

  그 다음으로 구한 것이 밑에 있는 사진의 민화 까치호랑이 그림입니다. 처가집 장롱에 들어가 있던 건데 하나 얻었습니다.


  덜 떨어진 모습이 정감이 가서 이 놈은 책상에 세워 놓고 매일 보고 있습니다. 시선도 정면을 응시하지 않고 옆을 쳐다보고 있으니 매번 봐도 부담 없습니다. 바알간 눈이 빙빙 도는 걸로 봐서 어디서 술이라도 한잔 걸친 모양인데, 줄기차게 외쳐대는 까치의 까다로운 요구사항을 다 들어주고 있는 모양새가 마치 시골 고향에 남겨둔 마음씨 너그러운 맏형 같습니다.

  이 그림을 가져다 놓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우연히 수색 지나서 고양의 화전에 있는 화분과 꽃을 팔고 있는 비닐하우스에 들렸다가 길이 약 80센티 정도의 크기인데 팔지는 않고 장식용으로 진열해 놓은 고양이과 동물 황동 조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자태가 날씬하게 앞뒤로 쭉 뻗어 있는 것이 아마 치타 조각상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필 꽂힌 나머지 황학동 벼룩시장에서 고양이과 동물 조각상 찾으러 다녔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마음에 드는 것은 없고 딱 한집에 표범 청동 전신 조각상이 있었는데 크기가 1미터는 훨씬 넘는 것 같고 무게 또한 10kg 이상 너끈히 나갈 것 같았습니다. 욕심은 나지만 비쌀 것 같아 망설이다가 값을 물어봤더니, 헉~ 생각보다 훨씬 비싸서 포기했습니다. ^^;;

  이번엔 인터넷을 뒤졌습니다. 어렵게 찾은 것이 아래 사진에 있는 황동으로 만든 숫사자상이었습니다. 척 보니 마음에 들어서 9만원 달라는 것을 7만으로 깎아 택배로 시켜서 집에 소파 테이블에 놔 두었습니다.


  사자 사진에서 뭔가를 발견하셨나요? 저는 첫날에는 못 봤고 사자조각상이 집에 도착한 그 다음날인가 두쪽을 보게 되었습니다.^0^, 그 디테일에 실실실 웃음을 짓다가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조각상의 배 밑을 살핀 순간 허탈해하고 말았습니다. 정말로 두쪽만 있는 놈이었습니다. ^^;, 지금은 책상에 올려놓고 보고 있습니다.

만강일향
만강하시길 바랍니다^^.

비티파티(beach party, james last)


  고등학교 다닐 때였습니다. 오래된 일이죠 ^0^

  Percy Faith 악단이 연주한 "The night, the lights went out in Georgia" 이라는 곡을 찾으로 다녔습니다. 학교 끝나면 중심가의 레코드 가게는 모두 뒤지고 다녔지요. 기간을 두고 다녔습니다. 한번 지나갔는데 없으면 한 2개월 후에 또 찾으러 다녔습니다. 라이센스 음반이 많이 쏟아져나올 때라 언젠가는 나오겠지 하는 기대를 가지고 말입니다.

  광복동, 남포동, 동광동에 있는 부산데파트, 멀리는 서면까지 나갔지만 원하는 곡을 찾지 못해 같은 일을 근 일년 이상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신학기즈음의 3월이라서 저녁 무렵이면 꽤 추웠습니다. 배도 고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차라리 뜨끈한 짬뽕이나 한그릇 먹고 집으로 들어가자"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당시 성음에서 나온 라이센스 LP 판이 장당 2,000원, 짬뽕은 한그릇에 500원이었으니 네 그릇이나 먹을 수 있었던 돈이었습니다. 부산은 바닷가라 해물이 싱싱해서 중국집마다 짬뽕이 그렇게 맛있었습니다. 면은 또 어떤가요. 손으로 뺀 면은 굵지도 가늘지도 않아 부드럽다 못해 국물과 함께 그냥 넘어갔습니다. 요즘은 이런 맛 느끼지 못합니다. -_-;

  중국집으로 짬뽕 먹으로 가는 길 도중에 그간 두어번 들른 적이 있는 광복동의 레코드 가게가 있길래 무심결에 들어서며 버릇처럼 물었습니다. " Percy Faith 의 The night, the lights went out in Georgia 들어왔나요" 제목이 길어 한번에 못알아 먹으면 예전처럼 다시 반복해서 말해주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가게 여직원이 두어번 들려서 물어봤던 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곡명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여직원이 내준 LP 판, 그것은 Percy Faith 가 연주한 것이 아니라 James Last 의 앨범 『beachparty 4』였습니다. 곡명을 기억해준 여직원이 고맙기도 했고, 이곡은 아마 라이센스 LP 판으로 안나왔고 앞으로도 안나올 것이라는 것을 그간 다녔던 경험으로 거의 포기한 상태였기 때문에 『beachparty 4』라도 기쁘게 들고 집으로 갔습니다. 판 사는 바람에 그날 짬뽕은 못먹었습니다.


  집에 와서 틀어본 "The night, the light went out in Georgia" 는 연주와 합창단의 노래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곡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beachparty 4』에 수록된 곡 전부 James Last 연주가 뒤에서 받쳐주면서 남여의 코러스로 엮인 거라 들으면 들을수록 묘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특히 창밖으로 한여름의 뜨거운 햇볕을 느끼면서 볼륨을 크게 해놓고 들으면 가슴이 뻥할 정도로 기분이 시원했습니다.

  A 면에서 B 면까지 연달아 틀어재끼며 흥겨워 했던 당시 고딩의 심정, 그 누가 이해나 해주었겠습니까! 시끄럽게 군다고 집안 식구들에게 핀잔 많이 들었습니다.

  『beachparty 4』에 삘 꽂힌 나머지 『beachparty 3』도 사서 고딩시절 즐겨들었습니다. 그리고 시일이 한참 지난 후에 생각나서 찾아보니 없었습니다. 애석하게도『beachparty』뿐만 아니라 고딩시절 짬뽕 안 먹고 아낀 돈으로 사 모았던 LP 전부가 안보였습니다. 아마 이사 도중에 없어져버린 모양입니다.

  또 다시 LP 판을 찾으러 돌아다닐 때는 이미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둘 정도로 세월이 흘렀지만 『beachparty』를 찾기 위해 과거 고딩 때 했던 그대로 답습했습니다. 들렀던 가게마다 없다고 하더군요. 너무 오래된 LP 판이라 재고도 없도 새로 찍어내지도 않을 거라고. 당시는 이미 LP 판 찾는 사람은 없어진지 오래고 가게마다 CD 가 진열대를 차지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황학동 벼룩시장입니다. 오래된 레코드를 파는 가게를 뒤져서 『beachparty 2,3,4』를 찾아냈고 『beachparty 4』는 테이프에 녹음을 해서 차 안에서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듣고 다녔습니다. ^0^

  물론 지금도 듣고 있습니다. CD 로 구워서 듣고 있습니다.

  Percy Faith 가 연주한 음반은 아직도 짬짬이 찾아보고 있지만 음반은 고사하고 고딩 이후로는 곡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햇습니다. 찾는다면 잠시나마 그때의 추억에 잠겨보고 싶습니다. ^0^

만강일향
만강하시길 바랍니다^^.

넌 너무 느려


  그 옛날, 벌써 한 20 년에서도 몇년이나 더 지난 옛날이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근무했던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IBM 5550 기종을 사용했었습니다. 소위 286 전 단계의 성능이었죠.

   스프레드시트 소프트웨어로는 MP(Multi-Plan), 워드 소프트웨어는 PE(Personal Editor)을 사용했는데 자료 입력이 많아지면 무척 버벅거렸습니다. 특히 MP 가 심했는데 행 하나 삽입하고 삭제하는데 30분 이상 걸리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정말로 중요한 자료는 날라가 버리는 것이 두려워 행 몇개 삽입해놓고 밤 새 기다렸다가 자료를 5.25인치 플로피디스켓에 저장하곤 했습니다. 퀭한 눈으로 사무실에서 아침 밥 먹으로 나가면서도 컴퓨터 원망할 줄 몰랐습니다. 

   요즘 물건분석 올리는데 하루에 한개 이상 채우기가 버겁습니다. 법원매각물건 검색해서 몇개 추려내고 그중 괜찮다고 생각되는 것을 물건분석에 올리는데 자료 찾고 수정하고 편집하는 일련의 작업들이 의외로 시간을 많이 잡아 먹네요. 게다가 작업창을 8개 정도 띄워놓고 하니 하드 돌아가는 소리가 덜덜덜 거립니다.

  "애는 대체 왜 이리 느려터진거야!" 컴퓨터를 원망하다가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적어봤습니다.

   그때는 그러고도 잘만 했었는데. ^0^ 

만강일향
만강하시길 바랍니다^^.

사파의 무공


  무협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딱 두 종류입니다. 정파인물, 사파인물.

  무협지에 나오는 무공도 딱 두 종류입니다. 정파무공, 사파무공.

  대체로 정파의 사람은 정파무공을 익히고 사파의 사람은 사파무공을 익힙니다. 정사의 무공을 가르는 잣대는 잔인한 파괴력과 무공을 익힌 사람의 심성이 악랄해지는 것으로 가름합니다. 또 하나의 두드러진 구별법은 사파의 무공은 노력에 비해 성취도가 무척 빠르다는 겁니다.

  서로의 자질이 비슷하고 수련 기간이 비슷하다는 조건이라면 사파의 무공을 연성한 자가 싸움에서 이깁니다. 거기에는 비겁한 암수도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빠른 성취도를 얻기 위해 정파의 인물 중에도 암암리에 사파의 무공을 연마하는 사람이 간혹 있습니다만 어느정도까지 수련을 하다보면 더 이상 진전이 없기에 높은 경지까지 다다를 수 없음을 깨닫고 괴로워합니다. 성취는 빠르나 깊이에 있어서는 꾸준히 연마하는 정파의 무공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죠. 


  단기완성이란 단어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전봇대나 벽에 붙어 있는 전단지에서 많이 보아왔고 지금도 많이 쓰이는 말입니다. 컴퓨터단기완성, 자격증취득단기완성, 어학단기완성, 방학특강단기완성 등등, 그냥 단어 뒤에다 단기완성만 붙이면 말이 됩니다. 노력과 시간은 적게 들면서도 큰 걸 얻고자 하는 인간의 속성을 아주 적절히 이용한 상술입니다.

  살다보면 귀찮은 과정 생략하고 대충 쉽게 가고자 하는 생각 당연히 들고 그럴 수도 있을 겁니다. 가령 책을 다 읽기 보다는 줄거리만 보고 내용을 파악한다든지, 성문기본영어 대충 보고 폼 나니까 성문종합영어로 갈아탄다든지, 수영 발차기 연습하는 것 힘드니까 대충 때우고 은근슬쩍 상급반으로 간다든지. 하지만 흉내는 낼 수 있을지언정 기초부터 닦아온 사람을 못이깁니다. 처음부터 새로 시작해야 합니다. 다 제 옛날 이야깁니다. -_-;;    

  인생에 있어서 지름길은 없습니다. 정도를 걸어야죠. 건너뛰지 말고 기초부터 꾸준히 밟아 나가는 것이 오히려 시간과 비용을 아끼는 방법입니다. 묘하게도 이 원칙은 인생의 전반적인 성장 과정에도 똑 같이 적용이 됩니다. 10대에 사춘기를 겪지 않은 사람이 20대든 30대든 나중에라도 꼭 사춘기를 겪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파의 무공, 단기완성 이런 것에 너무 빠지지 맙시다.

만강일향
만강하시길 바랍니다^^.

소원 잘 들어 주는 산



 계룡산, 지리산, 북한산 산자락 어디매쯤 들어가면 기도하기 좋은 곳이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기도빨이 잘 받는 장소기 때문에 무속인이 많이 찾습니다. 그 장소의 기 때문이 아니라 산 전체의 기로 인해 그 국한된 장소가 영향을 받는다고 해야지요.

  지금은 갈 수 없지만 북한에 유명한 산이 있는데 경인지역 무속인들이 단체로 관광길에 나선 적이 있었습니다. 관광을 기획한 사람이 같이 따라서 산을 올라가는데 자기들끼리 수근거리고 머리를 끄덕이면서 맞장구를 치는 양이 매우 만족해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있을 때 왜 그랬냐고 물어보니까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산속 나무 곳곳에 귀신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고" 

  귀신 이야기에 혼비백산한 관광기획자에게 무속인 한명이 우스면서 해준 보충 설명은 이러했습니다. 남쪽에는 기도를 잘들어주는 산이 계룡산, 지리산 등이 있어서 무속인들이 잘 찾는다. 그런데 이곳에 왔더니 기가 남쪽 산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세다. 이런 곳에서 기도하면 아주 잘 듣는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그 이후로 경인지역의 무속인들은 매년 그 산을 연례적으로 찾아 행사를 가졌습니다. ^0^, 여기까지는 직접 들은 이야기는 아니고 전해들은 이야깁니다.

  비슷한 시기에 우연히 기회가 닿아서 그 산에서 역술인협회의 간부를 만나서 수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 중에 이 산에는 귀신이 많다더라, 기가 세다더라 하고 제가 들은 말을 꺼냈습니다. 그랬더니 그 사람도 동의를 하더군요. 특히 이런 명산에는 큰 봉우리마다 지키고 있는 산신령이 있다면서 한술 더 뜨더군요.

  산신령은 평소에는 인간사에 관여를 안하지만 자꾸 자기를 찾으면 관심을 가지고 그 사람을 살펴본다 합니다. 한두번 빌면 또 누가 나를 귀찮게 하나 하던 산신령도 기도가 반복이 되면 소원을 들어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에 품은 소원이 있으면 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주봉을 바라보고 진심으로 소원을 빈다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음식물 조금이라도 비는 장소에 놓아두면 효과 배가 된다고 진지하게 이야기 하더군요.

 어떤가요? 당장 가까운 산에 가서 그렇게 하고 싶은가요? 전 그 말을 듣는 순간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 팔랑귀가 마구 팔락거림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산신령에게 소원을 말했냐고요?..... 네..., 몇번 정도. -_-;

  미신이라고 치부하기 전에, 진실한 소원을 비는 이면에는 그만큼이나 그 소원을 이루어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자신의 목표의식을 더욱 더 굳건히 할 수 있는 마인드콘트롤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고. 마인드콘트롤은 현실에서 더욱 뚜렷한 의식으로 되살아나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 가일층 노력을 하게 될 것이고, 이렇게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종래에는 소원을 이루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노력과 기도만 있으면.

  소원 이루기 쉽네요. 소원을 말해봐~ ^0^

만강일향
만강하시길 바랍니다^^.

꿈, 술 다 떨어졌어요.


 1985년 10월에 제대를 했습니다. 그후 약 10 여간 반복적으로 따라다니며 가슴 철렁이게 만들었던 꿈이 있었습니다. 병적 처리가 잘 못되어서 재입대를 해야한다는 꿈이었습니다. 꿈속에서 머리를 싸매고 무척 괴로워하다가 깨고 나면 꿈인 줄 알고 한동안 이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너무 행복해서였죠. ^0^

  1988년 1월에 입사를 했습니다. 그 이후로 간헐적으로 따라다녔던 꿈이 있었습니다. 학점을 3학점 정도 이수 안했는데 이수한 걸로 잘 못 처리됐다. 이수하기 전까지는 졸업 인정이 안된다.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 짤리면 안된다는 생각에 해결책을 찾아 백방으로 뛰어다니다 꿈에서 깨어나 허탈해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몇번 꾸다보니 나중에는 꿈속에서조차 이건 꿈이야, 현실이 아니야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게 되더군요. -_-;

  횟수는 재입대 꿈이 많았지만 스트레스의 강도는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점차 나이가 더 들면서 이런 류의 꿈에 자유로워지게 되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호흡이 "휴" 해집니다. 술자리에서 이런 꿈 꿨다고 털어놨더니 몇명이 동조를 하더군요. 나도나도 하면서.

  의외로 많은 사람이 이런 꿈을 꾸나 봅니다. 대한민국에서 남자로서 살아가야 하는 의무가 이런 꿈들을 만들어내는 걸까요? 님들은 또 무슨 꿈을 꾼 경험이 있나요?


 최근에는 마트에서 술 찾아 다니는 꿈을 꿉니다. "술 있어요?", "술 다 떨어졌어요" 마트마다 돌아다니면서 물어보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똑 같이 "술 다 떨어졌어요" 입니다.

  2011년부터 술을 끊기로 했기 때문에 꾸는 꿈일 겁니다. 1월달에는 2일만 마셨고 2월달에도 2일만 마셨습니다. 마신 양은 얼마 안되고 이마저도 더 노력했으면 안 마실 수도 있었습니다. 마트에서 술 떨어졌다는 말을 들어도 가슴이 철렁이지는 않고 그냥 아쉽다는 생각만 듭니다. 그러니까 충분히 끊을 수 있다는 자신이 생깁니다.

  하지만 오죽 마시고 싶었으면 꿈 속에서 술 사러 돌아다닐까요. 밤 10시 이후에 TV 드라마에서 술 먹은 연기 장면을 보고 난 후에는 술 꿈을 꿉니다. 밤 늦은 시간에는 술 먹는 장면은 방송에서 뺏으면 좋겠습니다. 보고 있으면 괜시리 먹고 싶은 충동이 입니다. 그리고 바로 뒤를 이어 기름진 안주 생각까지......!

  이번에는 얼마동안 술 꿈을 꾸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금주 실패하게 되면 당장 오늘이라도 안꾸게 되겠지요. 아니, 그동안 못마신 것 보충이라도 하듯이 "술 더 있어요?" 하는 꿈 꿀지도 모릅니다. 
 
  마트에서, 술 더 있어요? 하는 꿈 꾸지 말기를 빕니다. ^-^

만강일향
만강하시길 바랍니다^^.

2013년 3월 27일 수요일

북한산 비봉에 오르는 이유

 북한산 비봉을 가는 이유라고 해놓고 집에서 가까워서 간다고 마무리를 짓는다면 비봉으로 처맞겠지요? ^^;; 아래와 같은 이유 때문에 갑니다^^.

<북한산 비봉>

 앞으로는 말이죠. 생각보다 기대수명이 훨씬 늘어날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이 됩니다.

 얼마까지 늘어날지는 꼭 집어 이야기 못하지만 현재 기준으로는 대략 90세 언저리가 되지 않을까요? 이는 작년, 2012년 서울대 의과대학이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우리나라 국민 4명 중 1명은 적절한 기대수명이 90세 이상이라고 생각한다는 결과에 따른 것입니다.

 사람들이 현재 자신이 처한 건강과 재정을 고려한 상태에서 기대치를 약간 보태어 설문에 답변을 한 것이라서 90세로 추측하기에는 물론 약간의 오차는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앞으로 개발될 신약과 의학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수명은 자연스럽게 확 늘어날 것이고 이런 수명연장 프로젝트가 지속되는 이상 나이를 센다는 것은 의미가 없어질 것입니다. 왜냐고요? 얼마나 오래 사는냐가 아니라 살 만큼 살다가 너무 많이 살았다는 것을 느낄 때, 가는 날을 자신이 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외과적 수술의 발달로 사람의 외모만 가지고 나이를 추측하기도 힘들 겁니다. 그래서 90세가 20세의 외모를 가짐으로 해서 일어날 수 있는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 지나친 성형을 제한하는 법령이 만들어지기도 하겠지요. 뿐만 아니라 오래되어서 기능이 헥헥거리는 장기를 손 쉽게 바꿔 달 수도 있을 겁니다. 이쯤이면 인간의 나이는 더 이상 서열을 매기는 잣대가 될 수 없게 되겠지요^^.

<북한산 비봉의 진흥왕 순수비>


 그런데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언제가 될련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좋을 시절을 볼 수 있을까요? 봐야지요^^. 오래 살아서 보도록 노력을 해야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들의 몸이 건강해야 합니다. 건강해야 오래 살 수 있고 장기를 바꾸더라도 튼튼한 신체가 있어야 부작용도 덜하고 돈도 덜 들겠지요^^.

 그럼, 우리의 몸이 튼튼해지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요? 당연히 운동이죠. 여러 가지 방법 중에서 운동이 제일입니다. 그리고 운동 중에서도 산을 오르는 것이 또한 최곱니다.

 전 옛날에는 이런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다시 곧 내리올낀데 뭐할라꼬 저리 새 빠지게 올라가는기고'하며서 등산을 제일 등신처럼 여겼습니다^^;;. 지금은 당연히 안 그러죠^^.

 등산처럼 좋은 운동이 어딨습니까. 돈 안 들지요, 산 많은 우리나라이기에 눈만 돌리면 옆에 산이 있고 시간도 많이 안 걸리지요, 운동 효과 짱짱하지요, 다른 운동처럼 익히는데 스트레스 안 받지요.
<종아리 얼마나 아플까^^;;>

 그리고 산에 가는 으뜸은 내려오는 것보다 오르는 것입니다. 제가 옛날에 새 빠지게 올라가는 것을 씰데없는 것이라고 했던 산에 오르는 것!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예방약이자 치료제라고 인생의 긴 과정에서 잠시 시련에 빠진 사람에게 꼭 추천을 합니다.

 터질 듯한 심장과 거칠게 내 뱉는 호흡, 찢어질 듯이 부푼 허벅지 근육을 느끼며 산을 오르다 보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체력이고 그 체력 중에는 세파에 견딜 수 있는 체력 또한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반복이 되면, 강철 같은 체력과 폭풍과도 같은 소용돌이 속에서도 견뎌내는 탄탄한 인내가 생깁니다.

 그러므로 없는 사람은 만들기 위해 산에 올라야 하고 부족한 사람은 충전을 하기 위해 올라가야 하는 것이 산입니다. 이중에서 저는 어디에 속하냐고요? 어디에도 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넘쳐서, 오르면서 흘리고 옵니다(죄송합니다. 저의 손가락 방정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여간 어느쪽에 속하든 자주 산에 다녀 오세요. 건강한 몸과 함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힘이 쌓이면 인생의 반석이 됩니다^^. 그러면 앞서 이야기한 좋은 시절을 볼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고 이를 차분히 기다릴 줄 아는 여유로움까지 갖추게 될 것입니다^^.

<멀리 보이는 것이 북한산 비봉>

 그래서 전 북한산 비봉을 오릅니다. 가시죠^^.